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리뷰

개봉일: 2008년 11월 6일
감독: 조욱희
연출: 조욱희
장르: 다큐멘터리
제작사: SBS
상영시간: 100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김혜수 (내레이션)

사람은 언제,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나는 한때 이 질문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특히 나는 어렸을 적,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 ‘미움’일 때가 많았다. 그런 감정이 쌓일 때마다, 그것은 하나의 불씨가 되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미워해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진정한 용서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용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를 본 이후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영철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용서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용서’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용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영화는 고정원 씨라는 인물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유영철에게 가족을 잃은 고정원 씨는 한때 절망 속에서 자살을 결심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유영철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삶에 대한 욕구가 되살아났다. 고정원 씨의 선택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존재와 감정을 지탱하기 위한 길이었다. 그가 용서를 향한 여정을 떠나면서, 그의 삶은 다시금 그를 떠난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용서의 길은 그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족 내에서 그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두 딸은 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악몽이 그를 괴롭혔다. 용서는 그에게서도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향해 나아갔다.

반면, 안재삼 씨는 고정원 씨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유영철에게 가족을 잃고, 그 후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 속에서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의 마음 속에서 유영철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히 분노의 대상이었다. 고정원 씨와의 의견 차이는 그가 가진 고통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용서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복잡한 과정인지를 드러낸다.

이 다큐멘터리는 2년간의 긴 시간 동안 피해자 가족들의 삶과 감정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용서는 단순히 순간적인 결단이 아니라, 길고도 지속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고정원 씨가 ‘희망여행’에 참여하는 장면은 그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낸다. 이 여행은 살인 피해자 가족들과 사형수 부모들이 함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모습은 용서와 화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의 불빛을 비춘다.

조욱희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적인 행위”라고 말하며, 용서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강조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감정의 교훈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범죄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과연 용서는 가능한 것인가?"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해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에게 각자의 감정과 삶 속에서 그 답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용서가 단순히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원 씨의 결정을 보며 나는 그가 선택한 용서가 단지 유영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용서는 그 먼 길 끝에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는 용서의 복잡성과 치유 가능성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이슈 및 관객 반응

    이슈

    1. 장기간의 제작 과정: 제작진이 2년에 걸쳐 유족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촬영했습니다.
    2. TV 다큐에서 영화로 재탄생: 원래 2007년 12월 SBS 스페셜의 성탄특집으로 방송된 후, 극장 개봉을 위해 내용을 추가하고 구성을 수정했습니다.
    3. 김혜수의 내레이션 참여: 배우 김혜수가 극장판 내레이션을 맡았으며, 출연료 전액을 범죄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기부했습니다.
    4. 제작 지원: 천주교 사회교정 사목위원회의 제안으로 극장판 제작이 성사되었으며, 제작비는 천주교 측과 SBS가 공동으로 부담했습니다.
    5. 유가족들의 참여: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의해 가족을 잃은 고정원 씨, 안재삼 씨, 그리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배경은 씨의 부모 등 실제 피해자 가족들이 출연했습니다.
    6. 사회적 메시지 전달: 제작진은 이 영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고통 치유와 용서의 의미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관객 반응

    1. 감동적인 메시지: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2. 사회적 의미: 범죄 피해자들의 고통과 치유 과정을 다룸으로써,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제기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 현실적인 묘사: 2년에 걸친 취재를 바탕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내어 현실감 있는 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4. 치유의 방법 제시: 피해자 가족 모임 등을 통한 상처 치유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5. 종교적 색채: 영화 버전에서는 TV 다큐멘터리보다 종교적 색채가 짙어졌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이는 일부 관객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습니다.
    6. 논란의 여지: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사형제 찬반 논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영화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7. 제한적인 상영: 영화가 2주간 제한적으로 상영되어 많은 관객들이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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