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애
- 개봉일: 2000년 9월 9일
- 감독: 이현승
- 제작: 싸이더스
- 장르: 멜로, 드라마
- 상영 시간: 94분
- 이정재: 성현 역
- 전지현: 은주 역
- 김무생: 한 교수 역 (특별출연)
- 조승연: 재혁 역
- 최윤영: 혜원 역
- 이인철: 복덕방 아저씨 역
가끔 어떤 영화는 마음속에 쓸쓸한 흔적을 남긴다. 『시월애』가 나에게 딱 그랬다.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길 내내, 가슴 한편이 어쩐지 허전하게 시렸다.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는 듯한 쓸쓸함이 내내 따라왔다. 시간도, 공간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현실적이고도 아플 수 있을까.
일마레. 이탈리아어로 '바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영화 속에서 단순히 장소 이상의 역할을 했다. 고요하고 외딴 바닷가 위에 홀로 선 집. 창밖으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은 천천히 유리창을 스치며 흘러갔다. 기묘한 우체통 하나가 서 있는 이곳이 시간을 넘어 사랑을 이어주는 공간이라는 건 영화 초반엔 짐작도 못 했다. 그저 '저런 멋진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부러워할 뿐.
한데 이 기묘한 장소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1997년의 남자 성현과 1999년의 여자 은주. 두 사람의 편지는 시간의 벽을 가뿐히 뛰어넘어 서로에게 도달했다. 성현은 처음엔 이걸 그저 이상한 장난쯤으로 치부했지만, 은주가 써내려간 구체적인 이야기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간을 뛰어넘은 대화는 놀랍게도 너무나 현실적인 감정들을 품고 있었다.
영화가 매혹적인 건 이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부터다. 둘은 마주치지 않고도 서로의 상처를 공유했고, 묘하게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 적은 없지만, 관객인 나는 누구보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생생히 느꼈다. 아마 우리도 가끔은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딘가 있을지 모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고 있다고 믿고 싶은 순간이.
특히 이정재의 성현은 보는 내내 마음 한켠이 짠해졌다. 어딘가 외로운 눈빛, 그저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어쩐지 깊은 고독감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 전지현이 연기한 은주의 외로움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스며들었다.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하게 살던 그녀가 편지를 통해 조심스럽게 감정을 꺼내놓는 순간은 가슴이 먹먹했다.
시간을 초월하는 러브스토리는 흔하지만, 『시월애』는 전혀 뻔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을 넘나드는 사랑이라는 판타지적 설정 속에서 우리 삶이 지닌 외로움과 인간의 그리움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SNS 속에서 무수히 말을 나누지만 여전히 외롭고, 공허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연결감은 어쩐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성현과 은주의 편지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천천히 흐르면서, 나는 계속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두려움, 후회까지도 서로의 편지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결말이었다. 너무 쉽게 만나지 않고, 조금은 열린 결말을 남겼다는 점에서 영화는 더 완벽했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도 결국은 기다림과 그리움의 형태로 남아야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는 것을 알았던 걸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시월애』를 돌려보면, 그때와는 또 다른 울림이 있다. SNS와 메신저가 발달한 지금,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해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진짜 소통하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그럴 때면 종종, 이 영화가 떠오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아날로그한 편지 한 통의 따뜻함과 애틋함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진다.
나는 독자들에게 가끔 『시월애』를 권한다. 혹시라도 지금, 너무 외롭다면, 이유 없이 공허하다면, 이 영화가 위로를 줄지도 모르니까. 우리도 때론 삶에서 이해받을 수 없다고 느낄 때, 먼 시간 너머 어딘가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상상해보는 게 필요하다. 마치 성현과 은주처럼, 손끝 닿지 않는 거리에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줬던 두 사람처럼 말이다.
『시월애』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간절한 희망이 담긴 아름다운 편지 같은 영화다. 그리고 나는 그 편지를, 오늘도 가슴에 품고 산다.
이슈
- 일 마레 세트 제작: 강화도 석모도 해변에 '일 마레'라는 집을 세트로 제작했습니다. 이 세트는 갯벌을 다지는 지반 공사가 필요해 2억 원이라는 큰 제작비가 들었습니다.
- 원형 트래킹 촬영: 우편함을 중심으로 성현과 은주가 시간을 초월해 만나는 장면을 위해 원형 트래킹 카메라 워크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시도였습니다.
- 계절 불일치: 초여름에 촬영했지만 영화의 배경이 겨울이어서 배우들이 더운 날씨에 겨울 옷을 입고 연기해야 했습니다.
- 홍경표 촬영감독의 도전: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던 홍경표 촬영감독이 이전과 다른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 독특한 공간 설정: 감독의 의지로 갯벌 위에 집을 짓는 독특한 설정이 채택되었고, 이는 영화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관객 반응
- 감동적인 스토리: 시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 배우들의 연기: 전지현과 이정재의 케미스트리와 연기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영화 음악: 노이즈(NOISE)의 OST가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감성적인 연출: 이현승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 독특한 설정: 시간을 초월한 편지 교환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흥행 실패: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 비현실적인 설정: 일부 관객들은 시간을 초월한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 복잡한 내러티브: 시간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 인해 일부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 느린 전개: 일부 관객들은 영화의 전개가 느리다고 느꼈습니다.
- 《동감》 (2000)
1979년의 현수와 2000년의 지인은 무전기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소통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시간의 간극으로 인해 복잡한 관계에 빠집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시간을 초월한 사랑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 《클래식》 (2003)
대학생 지혜는 우연히 어머니의 옛 연애편지를 발견합니다. 편지 속 이야기는 1968년, 지혜의 어머니 주희와 상민의 첫사랑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한편, 현재의 지혜는 수현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세대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우연과 필연의 상관관계를 촘촘하게 엮어냅니다.
- 《번지점프를 하다》 (2001)
인우는 번지점프를 하다 사고로 기억을 잃습니다. 그는 과거의 연인 태희를 찾아 나서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영화는 환생을 소재로 동성애 코드를 섞어 진보적인 멜로를 선보입니다. 사회적 통념을 꼬집으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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